일상 리틀 포레스트의 밤조림을 따라하다 2010/01/22 16:59 by

리틀포레스트의 작가는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Dog-Eat-Dog, 산다는 건 먹고 먹히는 것이다. 내 입에 들어가는 건 모두 다른 생명의 것을 빼앗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 생명체 자신.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한다.

곰이랑 경쟁하며 갓 주워 온 밤은 단단하지 않아서 껍질을 손으로 벗길 수 있나 보다. 하지만 시장에서 사온 거라면 칼을 이용해야 한다. 제사 때 하듯 껍질을 깎는 게 아니다. 겉껍질과 속껍질 사이에 칼날을 넣어 잡아당긴다는 느낌으로 한다. 속껍질까지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반대로 털까지 숭숭 남을 정도로 속껍질이 두텁게 남는 건 괜찮다. 정 단단하면 살짝 삶은 후 벗긴다.

속껍질만 남은 밤을 허드렛냄비에 넣는다. 책에는 초목회나 중탄산소다를 넣은 물에 하룻밤 담가 두라고 되어 있다. 떫은맛을 빼기 위해서다. 베이킹소다가 식용 중탄산소다다. 하루 지나면 물이 엷은 갈색으로 변한다.

약불에서 30분 끓인다. 불에 올리자마자 색깔이 사약이 된다. 속살이 드러나 있으면 삶다가 껍질이 훌러덩 벗겨지는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물을 갈아주고 30분 더 끓인다. 서너 번 쯤 반복하면 사약에서 레드와인으로 바뀐다. 슬쩍 맛을 봐서 떫지 않고 먹을 만하면 된 거다. 속껍질이 있는 한 청명한 물 따위 불가능하다.

속껍질에 붙어 있는 심이나 털을 정리한다. 푹 삶은 밤 무게의 60%의 설탕을 넣고 조린다. 잼류를 만들 때 설탕 양은 무조건 줄인다. 금방 먹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키는 대로 했다. 밤 무게가 550그램이니 조금만 줄여서 300그램. 이런 걸 직접 만드는 건 역시 정신건강에 나쁘다. 설탕이 훨씬 많이 든 걸 뻔히 알면서도 남이 만든 건 잘도 먹는데.

바로 먹으려면 국물이 다 줄 때까지 기다린다. 보관하려면 조금만 조려서 병에 담았다가 먹기 전 바짝 조린다. 이 때 술이나 간장 등을 추가하면 풍미가 좋아진다.

빈병은 오븐에서 소독했다. 150도로 10분. 찬 물에 씻은 걸 그냥 집어넣는다. 수십 번 했어도 한 번도 깨지지 않았다. 단, 예열된 후가 아니라 처음부터 넣어야 한다. 차가운 병에 뜨거운 액체를 부을 때 자칫 깨질 수가 있는데 나이프나 포크를 걸쳐 두면 일종의 피뢰침 역할을 한다.  

오래 보관할 생각이라서 병 꼭대기까지 국물을 채웠다.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실온에 잠시 두었다가 식으면 냉장고 구석에 처박는다. 기다린다. 잊는다.

‘국물이 있는 채로 2-3개월 두면 설탕이 잘 스며들어 끈끈해지는데 난 이 정도가 가장 좋다. 속껍질이 마치 규히같은 식감이다.’ 밤조림을 만들기로 한 건 이 부분 때문이다. 규히란 쪄낸 찹쌀가루에 설탕과 물엿을 넣고 반죽한 것이라고 한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맛보다도 오히려 식감에 더 집착한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라면 저 무시무시한 설탕을 때려 넣고 두 달이나 기다리는 것도 마다 않는다.


핑백

  • 프리글루 : 백 일 동안 기다린 밤조림 2010-05-07 20:14:02 #

    ... 1월 22일 만든 밤조림을 오늘 먹었다. 정확히 백 일 하고도 닷새가 지났다. 바로 먹는 것도 좋지만 두세 달 후면 속껍질에 설탕이 잘 스며들어 끈끈한 게 규히 같은 식 ... more

덧글

  • 샐러드 2010/01/22 18:13 #

    먹는 것 앞에 부지런함은 먹히는 것에 예의라능
  • 2010/01/23 19:45 #

    그것이 참 지당한 말씀인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편해 보려고 자꾸 꾀를 낸단 말이죠.
  • bluexmas 2010/01/22 23:48 #

    저도 밤으로 뭔가 좀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게 또 귀찮더라구요. 속껍데기 벗기는 것도 그렇고...시장에서 벗겨주는 걸 사다가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리플 포레트스트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답글이 주렁주렁 열린 숲 같은 이미지도...
  • 2010/01/23 19:47 #

    앍;;;; 저는 오타를 내도 주로 엄하게 낸답니다. 이를테면 Swin Suit을 Swim Shit이라고 한다던가 ㅠ_ㅠ 뭔가 나의 내면을 반영하는 건가;;; 설마;;;

    그건 그렇고, 밤요리라면 역시 밤밥 아니겠어요? 아니면 밤빵. 전 이 책에 나온 것 중 호두밥도 따라 해 보려고요.
  • 레일린 2010/01/23 06:26 #

    푹 삶은 밤 무게의 60%의 설탕

    으아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 역시 베이킹이나 달달한 음식은 안만들래요 들어가는 버터나 설탕의 양을 알고 못먹느니 모르고 먹는 게ㅠㅠㅠㅠㅠㅠㅠㅠ
  • 2010/01/23 19:48 #

    저 설탕을 눈 앞에서 보면 충격이 더 심해요ㅠ_ㅠ

    캬라멜화된 설탕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크렘 브륄레 같은 건 잘도 사먹으면서 집에서 애플타트라도 만들때는 위에 설탕 안 뿌리는 얄팍한 인간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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