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크리스탈 제이드의 딴딴면과 미련 많은 여자 2010/02/10 21:51 by

명동은 의외로 먹을 데가 없다. 하동관은 값이 오르고 고기가 줄어서 맘 상한 데다가, 그 미끄러운 바닥에서 언젠가는 넘어질 거라는 생각을 매번 한다. 명동 돈가스는 명성을 잃은 지 오래고 명동교자는 글쎄, 먹으면 분명 맛있는데 묘하게 발이 가질 않는다. 향미의 우육탕면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가끔 먹어야 맛있지 자주 먹기는 적당하지 않다.

크리스탈 제이드는 싱가포르의 유명 체인이 국내에 진출해 세운 세 번째 지점이다. 작년 11월 처음 가서 딤섬 네 가지, 볶음밥 혹은 딴딴면, 아몬드젤리로 구성된 14500원짜리 런치 코스를 먹었다. 상해식 소롱포, 상해식 군만두, 매콤한 돼지고기 완탕 모두 무난했으나 주목할 건 무 페스트리! 완벽한 결의 페스트리를 제과점이 아닌 중국집에서 만다나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다음에 또 먹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볶음밥은 평이했으나 딴딴면이 감동이었다. 부계에서 물려받은 맵고 짜고 기름진 입맛은 어느덧 사라지고 요즘은 싱겁고 담백한 게 좋다. 딴딴면은 마지막까지 남은, 부계 입맛의 생존자다. 정말 맛있는 딴딴면은 딱 한 번밖에 못 먹었다. 매번 처절히 실패했음에도 메뉴에만 있으면 고뇌하다 주문한다. 이번에도 에라 모르겠다였는데 꿈의 딴딴면을 드디어 찾았다, 그것도 국내에서! 국물과 면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

12월에 다시 방문해 이번에는 단품으로 맛봤다. 지난번 받은 쿠폰으로 소롱포를 주문하고 나는 무 페스트리, 동행은 매콤한 돼지고기 완탕, 거기에 상해식 소고기 진빵을 추가하고 상해식 자장면을 두 그릇으로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무페스트리는 여전하고 돼지고기 완탕은 평이한데 상해식 찐빵이 기억에 남았다. 이름과 달리 쪄서 바닥만 튀기듯 구운 것인데 사르르 녹는 피의 식감이 발군이었다. 소가 단단히 뭉쳐있는 대신 더 헐거웠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훌륭했디. 자장면은 좀 달았지만 면발은 역시 좋았다.

혼자 다시 가 역시 쿠폰으로 딴딴면을 시키면서 비타민 마늘 볶음을 추가했다. 비타민도 마늘도 좋아하는데다가 전문가의 야채 볶음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은 화력이 약한데다가 부엌 바닥을 절대 더럽힐 수 없다는 마음가짐 탓에 한계가 있다. 슬프게도, 부가세 포함 7700원짜리 비타민 볶음은 기대 이하였다. 물이 흥건한데다가 이파리는 뭉그러지고 줄기는 풋내가 가시지 않은, 최악의 조합이었다. 이제 믿을 건 딴딴면뿐. 하지만 미지근했다. 그리고 달았다. 국물은 거의 손대지 않고 여전히 맛있는 면만 건져 먹었다.

1월에 또 간 건 미련 많은 여자라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이번에 넘어간 건 춘권 쿠폰이었다. 딴딴면을 또 시키는 대신 무페스트리를 주문했다. 다시 배신당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일까, 한 번 배신당한 사람은 계속 당하는 게 세상 이치다. 접시가 나오자마자 울부짖었다. 작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작아졌다. 적어도 15%는 줄어들었다. 양보다 질이라고? 페스트리에 대한 나의 사랑은 너무나 헌신적이서 맛만 있다면야 양이 적거나 값이 비싼 건 대충 눈감아주는 편이다. 그래서 또 울었다. 달아! 소에 첨가된 건 뜬금없는 볶은 깨만이 아니었다. 이것은 MSG였다. 설탕이 아닌 조미료, 단맛이 아니라 들큰한 맛이었다. 별 기대를 안 해서인지 춘권은 맛있었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정도는 아니었다.

웬일인지 또 쿠폰을 준다. 공짜면 뭐든 용서하는 여자라고 이마에 써있나 보다. 날씨도 풀렸고 반품할 것도 있고, 이번에야말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딴딴면을 주문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잔인하게 버림받은, 하지만 정말 좋아했던 남자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은 여자의 심정이었다.

딴딴면은 지난번처럼 미지근하지는 않았다. 국물로만 보아서는 확실히 나아졌다. 하지만 면은 퇴보했다. 살짝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삶았다. 거의 주문하자마자 나온 걸로 봐서는 미리 삶아둔 걸 토렴해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청경채는 비타민의 재래였다. 이런 종류의 야채는 끓는 물에 줄기부터 넣어야 한다. 한꺼번에 왕창 쏟아 부으면 풋내와 뭉그러짐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소롱포로 말하자면 역시 달았다. 딱히 좋아하는 딤섬이 아님에도 쿠폰 때문에 세 번이나 먹은 중 최악이었다.

나는 중국집에 가며 MSG가 전혀 없을 걸 기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절제 혹은 균형이다. 딤섬의 모양새로 보면 요리사들은 어느 수준 이상이다. MSG가 그들의 실력을, 그리고 고춧가루와 소금과 설탕과 그 밖의 맛내기들을 모두 무력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들큰한 맛 말고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단조로운 요리 이상을 먹고 싶다.


덧글

  • xmaskid 2010/02/10 22:04 #

    우앙 읽는데 너무 슬펐어요. 음식점의 맛이 변해가는거(처음에는 초청한 쉐프가 하다가 점점 손을떼면서 현지 쉐프가 다 떠맡게 되는거) 참 아쉬운 일이네요.
  • 2010/02/11 21:19 #

    우앙 저도 쓰면서 슬펐어요. 맛이 안 변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득인데 어째서? 그래도 잘 되면 상관 없겠지만 점심 시간에도 꽉 차질 않더라구요. 명동에서 그러면 문제 많은 거죠. 장사가 안 되면 안 될수록 맛은 더 떨어지던데, 보통.
  • F모C™ 2010/02/10 22:21 #

    조미료 들어가면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 그런지, 아니면 뭔가 재료의 질이 떨어져서 그걸 덮으려고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더이상 미련을 안 가져도 될것같은데 말입니다( '')a
  • 2010/02/11 21:20 #

    맛이 뭐 이리 심심하냐고 항의한 사람이 있었을 것도 같아.
    미련은 뭐, 이제 쿠폰 없으니까 떨치는 거지. 쿠폰이나 세일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멋진 여자가 되고 싶어, 나도.
  • 달에 2010/02/11 00:38 #

    한줄 한줄 읽으며 변해가는 음식에 함께 좌절하는 마음을 느꼈어요;ㅁ; 맛있는 집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 집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맛으로 날 대해주는 것도 어려운 것 같아요.
  • 2010/02/11 21:21 #

    나는 아직 사랑하는데 왜 ㅠ_ㅠ
    그래도 10년 이상 변치 않는 집이 명동에 하나 있어요. 단 한 번도 실망을 안겨 주지 않은 집. 거기 포스팅은 다음 기회에^^
  • melory 2010/02/11 00:56 #

    언제 저랑 산동으로 덴뿌라나 먹으러 가시지요...
  • 2010/02/11 21:23 #

    그 구시대형 미남 아저씨가 일하기 싫어하시잖아요. 지금쯤 후계자에게 넘기지 않았어야 할텐데요. 얼마 전, 가게랑 한참 떨어진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저씨를 발견한 적도 있어서 살짝 불안합니다요.

    그, 그래도 멜님과 함께라면 산동성이라도 가겠어요!
  • 강우 2010/02/11 06:04 #

    하동관에 맘상하고, 명동돈까스는 이미 머릿속에 지운지 오래고, 명동교자도 내키지 않고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ㅠ.ㅠ
  • 2010/02/11 21:27 #

    더불어 취천루는 맛이 오락가락하고, 개화 굴짬뽕은 텁텁한 게 내 취향이 아니고, 산동교자는 식사 메뉴는 평이하고, 뭐, 그렇습니다.

    근데 저는 쇼핑을 끊지 않는 이상 정기적으로 명동에 나가줘야 한단 말이죠. 누가 비장의 맛집 하나 찔러 주면 무지 고마울텐데요 ㅠ_ㅠ

    참, 크리스피 앞에 저녁때면 서는 즉석 핫바는 맛있었습니다.
  • 카이º 2010/02/11 16:01 #

    명동은 진짜 가면 없습니당 ㅠㅠ 공감해요~~

    그나저나 저 무 페스트리는 진짜 독특할거 같애요~
  • 2010/02/11 21:29 #

    무채를 소금에 절였다 꼭 짜서 참기름, 돼지비계, 화퇴, 건새우, 파를 섞어서 소금, 설탕, 후추로 간하는 거거든요.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만났어요.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무라는 거 눈치 못 채는 사람도 많을 거에요.
  • bluexmas 2010/02/11 21:42 #

    크 조미료 미터가 많이 올라가셨군요. 저는 밖에서 두 끼를 못 먹겠더라구요. 속이 부글거려서요-_-;;;
  • 2010/02/12 21:51 #

    역시 도시락이 좋은데 날도 춥고, 먹을 데도 마땅하지 않고, 그렇습니다.
    비교적 MSG 사용이 적은 미국에 있다 오셨으니 조미료 민감도가 높겠어요 ㅠ_ㅠ
  • 노호호 2010/02/25 13:42 #

    꼭 먹으러가야겠어요 무페스트리 !!!
    저 어릴땐 서호돈가스라고 명동에 30년된옛날돈가스집있었는데 어찌됐나 모르겠네
  • 2010/02/25 22:48 #

    무 페스트리 크기가 줄어들고-_- 조미료가 대량 투하되었지만 ㅠ_ㅠ
    뭐, 여전히 껍질은 맛있고 무엇보다도 다른 데서는 먹기 힘드니까요.
    명동 나가시면 한 번 시도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거에요.

    서호 돈가스 저도 오다 가다 한 번 쯤은 본 것 같은데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 노호호 2010/02/26 00:41 #

    목빠지게기다리는데 왜안올리시는거에요 변함없는명동그곳 대체 어디에요 !!
  • 2010/02/27 22:24 #

    그곳은 도향촌이라고, 중국 과자점입니다;;;
    가능하면 다음 주 중에 포스팅을...
  • 2010/02/28 00: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03/01 18:32 #

    향미 마늘이랑 후추 게튀김 맛있죠>_<
    근데 운 나쁘면 너무 딱딱한 게 걸리더라구요.
  • 2010/02/28 00:4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03/01 18:32 #

    그, 근데 사실은 이미 먹고 온 건 물론이고 사진찍어서 편집까지 끝났다능;;;
    단지 게을러서 안 쓰고 있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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