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얘기가 왜 이리 좋을까. 책이건 영화건 먹는 얘기 나오면 일단 본다. 그런 걸 푸드 포르노라고 하더라. 맥락을 뛰어 넘어 음식을 보여주고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미디어. 음식이 나오는 소설과 음식 포르노 소설은 다르다. 섹스를 다루는 영화와 포르노 영화가 다른 것과 꼭 같이.
푸드 포르노라면 질리도록 봤지만 그냥 포르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방면에 이력이 난 사람들 말로는 포르노의 핵심이 실용성인 건 맞지만, 단순히 많이 벗고 많이 한다고 실용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란다. 반대로 예술성, 개연성, 이딴 걸 꼭 갖춰야 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푸드 포르노의 문법도 비슷하다. 먹는 얘기가 많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나와서 비중독자들을 울컥하게 만들 정도여야 하는 건 맞다. 그치만 그놈의 실용성이라는 게, 이 경우에는 음식이 주는 살짝 가학적인 황홀함이란, 먹는 얘기가 많을수록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음식 말고도 동물, 예쁜 여자, 예쁜 옷 나오는 영화에 다짜고짜 열광하는 사람으로서, 그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우리 중독자 일동을 흥분시키는 게 무엇인지 이해 못 하는 가짜 포르노들이여, 꺼져라.
‘섹스, 파스타, 그리고 거짓말’. 제목에서 움찔했지만 일단 골랐다. 나는 중독자니까. 배경은 로마.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온 미국인 금발 미녀 로라. 누벨 퀴진의 대가 알랭 듀프레가 설립한 별 세개 짜리 레스토랑 템플리의 웨이터이자 관광객 전문 바람둥이인 토마소. 템플리의 말단 요리사이자 토마소의 절친한 친구 브루노. 토마소는 로라를 낚으려고 요리사라고 거짓말하고 브루노는 친구를 위해 대신 요리를 해준다. 브루노가 로라를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 근데 그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천재 요리사였던 것이다.
사기극은 결국 뽀록난다. 덤으로 브루노의 은밀한 마음도. 로라에게는 변태, 토마소에게는 배신자 낙인이 찍힌 브루노는 단골 커피집 털털이 밴을 빌려 전 이탈리아를 방황한다. 상심해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와중에도 지방 요리란 요리는 다 챙겨먹는 브루노. 그러다 요리의 극의를 깨닫는다! 누벨 퀴진 따위와는 다른, 에헴, 진정한 로마 요리.
이 낯 뜨거운 줄거리가 대가적 솜씨로 감동적으로 어우러지냐고?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별로냐고? 아까부터 말하고 있지 않나. 나, 푸드 포르노 중독자다.
퀸토 콰르토, 즉 부산물. 끓는 물에 삶아 채 썬 양의 뇌와 송아지 간 등에 달팽이, 아티초크, 사과, 배, 우유에 적신 빵을 섞어 한 입 크기로 튀겨낸 것을 모데나 발사믹 식초에 찍어 먹는다. 뜨거운 목탄으로 구운 스테이크에 갓 짜낸 올리브유를 뿌려 소금을 듬뿍 찍어 먹는다. 제노바 항구에서는 길거리 음식인 파라나타를 먹는다. 병아리콩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부유, 물, 소금을 넣고 장작 오븐에서 재빨리 구웠다. 파르마에서는 다른 지방으로는 팔지 않는 쿨라텔로 디 지벨로를 맛본다. 소금과 양념으로 숙성시킨 돼지 엉덩이 살을 방광 안에 넣고 하천 유역의 축축한 공기 속에 18개월 동안 둔다. 반 정도는 상해 버리지만 나머지 반은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하면서도 강렬한 맛을 가진 햄이 된다. 아아, 백 년 묵은 발사믹에서는 어떤 맛이 날까. 먹어볼 수 있다면, 영혼까지는 곤란하지만 제법 대단한 걸 팔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포르노다. 먹는 얘기를 보고 듣고 읽는 게, 실제 먹는 것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루하다. 그치만 중독자라면?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저수분 방식으로 두 시간 조리한 통삼겹살을 먹었다. 지방은 혀에 닿는 즉시 녹아 없어졌고, 살코기도 씹을 필요 없이 넘어갔다. 다 먹을 때까지 책장 넘기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덧글
당고 2010/08/14 21:01 #
전 먹는 얘기, 보다도 그냥 먹는 게 좋은 듯;아우아우아우- 또 배고파요 엉엉ㅠ
프 2010/08/15 21:46 #
당고님은 중독자가 아니시군요!먹는 얘기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살짝 피가학적 느낌이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욕망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지만 충족시킬 수는 없는 안타까움!
...쓰면 쓸수록 이건 중독 수준이 아니라 변태라는 느낌이 ㅠ_ㅠ
정메롱 2010/08/14 21:33 #
초면에 실례지만 센스쟁이십니다ㅎ
프 2010/08/15 21:52 #
어머, 이렇게 달가운 덧글을 달아주신 정메롱님이 더 샌스쟁이십니다요 ^_________^
2010/08/14 22:02 #
비공개 덧글입니다.
프 2010/08/15 21:55 #
실례는요^^웹에 올린 글인 걸요.
출처가 있다면야 링크는 말없이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달에 2010/08/14 22:09 #
먹는 이야기, 먹는 영화, 먹는 만화, 먹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일상들이 전 너무 좋아요>_<
프 2010/08/15 21:56 #
이 얘기 하면 기절하실 지 모르는데, 제가 본 음식만화 다 합치면 백 종 쯤 될 거 같아요-_-;;;;한가한 사람 맞습니다 ㅠ_ㅠ
나난 2010/08/14 22:15 #
으,으,으아-'책이건 영화건 먹는 얘기 나오면 일단 본다. 그런 걸 푸드 포르노라고 하더라.'
이거 제 얘기잖...ㅠㅠ
오늘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쳐묵, 쳐묵, 쳐무루루루루룩 했어요ㅠㅠ 엉엉엉어어럼러벌어류ㅠㅠ
프 2010/08/15 21:58 #
어머 어머, 우리는 왜 이리 공통점이 많은 걸까요;;;푸드포르노가 아닌 그냥 포르노중독이 공통점이었다면 정말 민망했겠습니다.
근데 나난님은 푸드포르노보다는 진짜 푸드를 월등히 좋아하시는 듯!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좀 더 증상이 심각합니다.
나난 2010/08/15 22:00 #
역시나 음식을 좋아하는 저 답게, 제가 요새 제일 좋아하는 웹툰은 '코알랄라'예요ㅎㅎ프님 아직 접하지 못하셨다면 다음 웹툰에서 코알랄라를 검색해 보셔요ㅎㅎ
프 2010/08/16 21:35 #
아니....왜..... 저에게 이런 걸 소개시켜 주신 겁니까 ㅠㅠㅠㅠㅠ저 요새 바쁘다구요ㅠㅠㅠㅠㅠ
초인적 의지를 발휘해서 다섯 편만 보았네요.
내일도 또 발휘할 수 있을까-_-
나난 2010/08/17 13:36 #
프님!오늘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히히히-
오늘의 코알랄라 주제는 무려 '식빵' 입니다!
프님도 좋아하고 저도 좋아하는 '빵'이 주인공이라구욧!
자, 얼른 달려가서 코알랄라를 읽으세요, 그리고 식빵을 먹는겁니다요!!
프 2010/08/18 20:58 #
안돼요 ㅠㅠㅠㅠㅠㅠ바쁜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시간에 빵이 먹고 싶어질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냉동칸에 폴 앤 폴리나의 허브빵이 있담 말입니다-_-;;;
네, 네일도 아침부터 빵 먹을 건데 ㅠㅠㅠㅠㅠ
나난 2010/08/19 10:11 #
우왕-폴앤폴리나 허브빵 먹어본지 너무 오래 됐어요ㅠㅠ
열두시 오픈할 때 가면 허브빵이 안 나와 있어서 사먹어본지 진짜 오래됐네용ㅠㅠ
프 2010/08/19 22:56 #
저는 반대로, 주로 2시 쯤 가서 바게트 먹기가 너무 힘들어요.한 번은 성공할 뻔 했는데 바로 앞의 아줌마가 다섯 개를 사가는 만행을-_-+++++
나난 2010/08/20 22:04 #
저도 저번에 열두시 전에 도착했는데도, 앞에 온 직장인 무리들이 바게트 몽창 사가는 바람에삼십분 기다려서 새로 나온 바게트 사온 적 있어요ㅠㅠ
그래도 기다리면서 빵 계속 집어먹을 수 있어서 씐나더라구욬ㅋㅋ
프 2010/08/21 19:49 #
폴앤폴리나의 장사 비결은 누가 뭐래도 후한 시식 인심은 듯 해요.저도 처음엔 정신 못 차렸는데 요즘에야 눈꼽 만큼 자제력이 생겼어요.
거기가, 제빵에 관심있는 전업주부들 사이에서 일종의 관광명소;;;가 된 것 같더라구요.
거기 때문에 일부러는 아니지만, 어쨌건 지방에서 올라오면 들러서 한 보따리 사가는;;;
★ 2010/08/14 22:26 #
서평 밑에 적절한 빈 그릇.잘 보고 갑니다.
프 2010/08/15 22:00 #
저도 너무 적절해서 흐뭇했다능;;;;숨도 안 쉬고 먹고 나니 남은 접시들의 향연.
접시 짝 맞춰 차리는 일이 드문데, 하필 같은 세트라서 더 임팩트;;;가 있는 듯 해요.
2010/08/14 22:28 #
비공개 덧글입니다.
프 2010/08/15 22:01 #
비밀글님도 그 동네 자주 가시나보군요.설마 저처럼 희대의 길치는 아니시겠죠.
일 주일에도 몇 번씩 가면서도 맨날 길 잃어버려서 고민 끝에 냉장고에 붙여놓고 밥 먹을 때마다 들여다봅니다.
효과요?
....없다고 말씀드리면 비웃으실 건가요 ㅠ_ㅠ
tom 2010/08/16 13:26 #
아 저도 길치방향치안면인식장애의 트리플 특급장애인-_-입니다.저는 일주일에 여섯번 가면서도 늘 길 잃어버립니다
결정적으로 지도보는법을 모르는것같습니다 ㅋㅋ
st.h가 더 반가웠던 건 작년까지 표지를 맡았던 이유도 크고요.
개인적으로 카페에앉아 도란도란 대화하고싶은 블로거님은 처음입니다 ㅎㅎ
프 2010/08/16 21:42 #
옴마야 길치 일족이셨군요!저도 물론 트리플 장애인데, 묘하게 지도는 잘 봅니다-_-v
제대로 된 지도만 있으면 처음 가는 동네에서도 무적!
근데 지도가 조금만 부정확하면 림보에 빠짐;;;;
우앙, st.h 표지 일을 하셨군요.
우연히 발견했는데, 제가 본 홍대 지도 중 제일 훌륭해서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지라~
웹에서 이런저런 인연이 생각지도 않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 보면 참 재밌어요^^
googler 2010/08/15 00:33 #
오늘 주문거셨는갑따. :)
프 2010/08/15 22:02 #
사실은 맨날 거는데 시전자가 부실하다보니 이번에 겨우 성공했다는;;;
맛있는쿠우 2010/08/15 00:54 #
포르노, 라는 단어가 딱히 좋은 어감은 아닌데 글이 굉장히 운치있네요푸드 포르노라는 말도 처음 들었는데, 알아갑니다
프 2010/08/15 22:08 #
비교적 최근 생긴 말이라고 하더라구요.푸드 리얼리티쇼가 대폭발하면서인 듯 해요.
음식 관련 책 매출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nytimesbooks를 팔로우하는데, 일 주일에 최소한 한권씩은 음식 관련 신간 트윗이;;;;
포르노는 딱히 좋은 어감이 아니라기보다는 매우 나쁜 어감 아닌가요^^;;;
그치만 너무 적절한 표현이라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빠다 2010/08/15 07:09 #
잘 읽고 가요~ 잡상이라기엔 너무 센스있는 글!
프 2010/08/15 22:09 #
에헷, 감사합니다.근데 실은, 감상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잡상으로-_-;;;;;
덕분에 고쳤어요^^
hue_ 2010/08/15 08:50 #
안녕하세요 프님! 재밌게 읽고 갑니다^^
프 2010/08/15 22:10 #
안녕하세요 hue_님, 반갑습니다!재밌게 보셨다니 뿌듯합니다요.
2010/08/15 11:35 #
비공개 덧글입니다.
프 2010/08/15 22:23 #
닮았고 말고요!기초적 욕망 중에서도 수면욕이라던가 배설욕과는 달리, 성욕과 식욕은 정말 흡사해요.
저도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 좋아해요 >_<
(철자법이 우리한테 허락도 안 받고 이렇게 바뀌었더군요-_-)
실은 책은 안 보고 영화만 봤지만요.
누덕누덕 이불 늘어뜨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이랑,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먹고 알몸으로 말 타고 사랑의 도피-_-하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더불어, 도입부의 부엌이야말로 저의 꿈의 부엌!
watermoon 2010/08/15 20:16 #
사진이 더 섹시해보입니다 ㅎㅎㅎ예전에 대학교 2학년때인가 한참 야한 영화에 관심이 많던 시절
동성친구랑 비디오방에 가서 너무 너무 너무 야할것 같은 비디오를 발견했답니다.
바로 페넬로페가 섹시하게 빨간 고추들 사이에 누드로 누워있는 비디오였어요.
제목도 <맛을 보여드립니다?> 였나?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는 빨갛고 매운 고추를 사용하는
화끈한 멕시코 요리에 관한 영화였답니다.ㅋㅋㅋㅋ
프님께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프 2010/08/15 22:27 #
페넬로페 크루즈 말씀이신가요?냅다 검색하고 왔습니다.
꼭 봐야 할 것 같군요 *.*
페넬로페 양 나오는 야한 영화를 원하신다면 하몽하몽은 어떠신지요?
뭔가 짐승 스멜 물씬 풍기는 야함이에요...부끄부끄
아름다운 시절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요즘도 미인이지만 열여덟 살 시절의 미모를 기억하는 입장에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ㅠ_ㅠ
watermoon 2010/08/16 00:49 #
하몽하몽은 예전에 멋보르던(?) 20살때 보니 뭐야.. 그랬는데최근에 다시보니 무지 야하더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정한 야한걸 파악한 듯...
특히나 단순한 섹시함이 아님 여인의 농염함이 풍겨나오는 사람을 보면
감탄하게되요 ㅎㅎㅎㅎ
정말 뭔가 짐승스러운 야함이라니까요
특히 가슴은 팬케이크 맛에 빗대는 장면은 어찌나 야하던지
아이구 저도 이 야밤에 혼자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
프 2010/08/16 21:51 #
저도 그 때는 어려서 남자의 허벅지가 섹시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포인트;;;인지 몰랐다능;;;그냥 부끄부끄만 했는데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 모아 놓고 상영회라도 열까봐요.
물론! 여성 전용으로 말이죠.
근디 여기서 충격은 페넬로페양이 하몽하몽 찍을 당시 열여덟이었다는 사실;;;;
더 충격은, 아름다운 시절 역시 같은 해에 찍었다는 사실이죠 ㅎㄷㄷ
샐러드 2010/08/16 14:18 #
아아 그렇구나. 나도 푸드포르노 중독자였구나. 흐어....키친은 참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음식 보려고 알고 봤어요.
프 2010/08/16 21:53 #
아니 왜 이렇게 중독자들이 많은 겁니까.유유상종 말고 다른 답은 없겠죠-_-;;;
프 2010/08/16 21:54 #
저도 키친 케이블에서 해주면 볼 것임-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