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삶은 계속된다 2011/03/06 19:08 by

1969년 8월 30일, 세계적 솔리스트 다섯 명이 모였다. 슈베르트의 송어 5중주를 위해서였다.

대니얼 베런보임은 1942년 태어났다. 그는 열두 살에 이미 푸르트뱅글러에게 인정받은 피아니스트였지만 1966년 방향을 바꿔 세계적 지휘자가 되었다. 재클린 뒤 프레는 1945년생이다. 열여섯에 데뷔한 이래 은퇴할 때까지 지속적 명성을 누렸으며, 특히 엘가 첼로 콘체르토 E단조의 해석은 전설로 남아있다. 이차크 펄만 또한 1945년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세계적 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핀커스 주커만은 1948년 태어났다. 그 역시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다. 주빈 메타는 1936년 태어났다.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했으나 결국 18세에 음악으로 방향을 바꿨다. 1958년 데뷔 이래 성공가도를 달려 세계적 지휘자가 되었다.

베런보임은 1967년 뒤 프레와 결혼했다. 펄만과 주커만은 같은 학교, 같은 스승 아래에서 공부했다. 베런보임과 메타도 동문이다. 무엇보다도 베런보임, 펄만, 주커만은 모두 유대계다. 뒤 프레도 영국 출신이지만 결혼 직전 유대교로 개종했다. 베런보임은 1968년에서 1970년까지 사우스뱅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예술 감독을 맡았다. 지휘자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짐작컨대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인맥이 총 동원된 결과, 역사상 가장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가장 재기발랄하다고는 할 수 있는 송어가 탄생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5중주에는 다섯 가지 악기가 필요하다. 바이올린은 펄만, 첼로는 뒤 프레다. 베런보임이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고, 주커만은 바이올린 대신 비올라를 잡았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메타가 콘트라베이스를 맡았다. 어렸을 때부터 했다지만 무대에 서본 지 십 년이 넘었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살짝 불안하지만 어쨌거나 수퍼팀이다. 넘돌이마저 범상치 않다. LA필에서 주빈 메타의 보조를 맡았던 로렌스 포스터가 악보를 넘겨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이 역사적 현장을 크리스퍼 누펜이 촬영했다. ‘송어’는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라는 게 거의 없던 시절에 나온 것이지만 여전히 이 장르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들 중 하나로 꼽힌다.

재능과 품성. 둘 중 하나를 하늘이, 하나만 주겠다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저에게 품성을 주세요. 상냥하고 너그럽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행복하리라는 법은 없다. 특히 행복한 예술가라니, 어딘가 형용모순이다. 하지만 언제나 상냥하고 너그럽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불행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송어’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열망했다. 아아, 하루라도 좋으니 저런 재능을 갖고 싶다. 저렇게 빛나고 싶다. 놀랍게도, 성큼성큼 걸으며 바이올린을 켜는 주커만은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겨우 스물한 살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를 가졌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몇 년 치 일정이 빼곡하게 잡힌 연주자들이 어렵게 시간을 낸 것은 단지 서로서로 친해서만은 아니다. 재능과 재능이 막상막하로 부딪히며 불꽃을 튀기는 순간 느끼는 짜릿한 쾌감. 이것은 ‘지음’이라는 식상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다.

5중주라는 면에서 볼 때 ‘송어’는 문제가 많다.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다. 이 ‘송어’에는 고운 비단을 짜듯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얽혀 화려한 무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하다. 개인 기량이 뛰어나면 뭘 하나, 다 모여서 서로 맞춰 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베런보임의 촐싹맞은 피아노는 현악기들을 때로는 이끌고 때로는 받쳐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족한 완성도 대신 재기는 충만하다. 젊고 재능에 넘치는, 자신만만한 솔리스트들이 남 눈치 안 보고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불꽃같은 연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4분 50초 무렵이다. 구령을 붙여 가며 당김음을 들어가는 그들은 너무나 즐겁고, 또 행복해 보인다.

이후로도 그들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기만 했다. 하지만 2년 후, 뒤 프레는 손가락이 둔해지는 걸 느낀다. 그녀는 결국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고 1973년 은퇴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였다. 남편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수많은 명연을 벌인 그녀지만 마지막 콘서트의 지휘를 맡은 건 레너드 번스타인이었다.

뒤 프레가 베런보임을 만난 건 1966년이다. 이듬해 그녀는 프로모터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는,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유대교로 개종하고 그와 결혼했다. 아내의 발병 후 베런보임은 결혼은 유지한 상태로 엘레나 바시키로바와 살며 두 아들까지 낳았다. 그 관계를 아내에게 숨기려고 애썼다지만 그녀가 정말 몰랐는지 누가 알겠는가. 뒤 프레는 1987년 42세로 사망했다. 1년 후, 베런보임과 바쉬키로바는 결혼했다.

1997년 뒤 프레의 언니 힐러리는 동생 피에르와의 공저에서, 재클린은 1971년에서 72년까지 자신의 남편 핀지와 바람을 피웠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좌절 상태의 동생을 ‘돕기’ 위해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9년 힐러리의 딸 클레어는, 아버지는 상습적 바람둥이었으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모를 유혹했다고 반론했다.

지나친 재능은 불행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두 가지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지,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일어나며,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이다. 뒤 프레와 베런보임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 희망에 찬 천재들 중 2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리라는 사실뿐이다.

대니얼 베런보임
주빈 메타

핀커스 주커만과 이차크 펄만


주커만은 1870년대 지휘를 시작했고 베런보임의 뒤를 이어 71년에서 74년까지 사우스뱅크 패스티벌의 감독도 맡았다. 여전히 세계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송어’에서 다정하게 비올라를 고르던 유지니아와는 결혼 17년 만에 이혼했으며, 이후로 두 번 더 결혼했다. 펄만 또한 최근 지휘를 시작했으며 토비와의 사이에 총 다섯 명의 아이를 두었다. ‘송어’의 새댁 낸시 코박은 메타의 첫 부인이 아니다. 6년 만에 이혼한 첫 부인은 2년 후 메타의 형과 재혼했다. 로렌스 포스터는 승승장구했고 1989년 캘리포니아의 퍼시픽 심포니의 지휘자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한창 진행 중 계약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고, 그는 2002년 이후 리스본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하고 있다. 이후의 행적은 더 이상 추적하기 어렵다.
 


덧글

  • 수호천사 2011/03/06 19:19 #

    인생 어찌될 지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이런 거군요.
    재클린 뒤 프레의 사망, 주빈 메타의 아내가 그 형과 재혼...
    왜 많은 음악가들은 그 인생이 묘하게 꼬여 있는지...
  • 2011/03/07 20:54 #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삶에는 우리가 모르는 엽기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음악가뿐 아니라 누구나,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 같아요.
    단지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알려지지 않을 뿐^^;;;

    물론 음악가들은 확률-_-적으로 더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뭐랄까,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일상에 덜 매몰되니까요;;;
    우리가 욱했을 때 주저앉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궁상맞은 ㅠ_ㅠ 현실이죠.
  • 키르난 2011/03/06 19:44 #

    뭐랄까... 만화에서만 보던 조합? (이봐..;...)
    클래식계에 밝지 않은 제가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데서 더 무섭습니다.; 저런 멤버가 모여 같이 즐기며, 놀며 연주할 수 있다니 말이죠.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고요. 5중주를 하려면 서로 음악이 잘 맞고 잘 어울리고 하는게 필요한데,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보니 소리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안들지만 발랄한 분위기네요. 신나게 놀면서 연주해서 그런가..-ㅁ-;
    하지만 그 뒷 이야기는 씁쓸합니다. 미술가도 그렇지만 음악가도 삶에 부침이 참 많은 것 같아요..(먼산)
  • 2011/03/07 20:58 #

    정말 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더군다나 5중주를 시켰다니 놀라운 일이죠.
    저 메타가 그 메타 맞나 놀라서 확인했다니까요;;;

    아무리 인맥이 좋아도 그렇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로 보입니다.
    음악가 매니지먼트가 요즘처럼 빡세지 않았을 테니까요.

    조화를 추구한다기보다는 서로 서로 튀려고 노력하는 연주죠?
    지휘자가 둘씩이나 되는데 싸움 안 난 것도 신기합니다. ^^;;;;
    펄만이나 주커만도 나중이지만 지휘했고;;;
  • 홍홍양 2011/03/06 22:07 #

    전에 읽었던 자클린 뒤 프레에 대한 글에서.. 그녀가 연주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던 중,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고 오히려 안도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참 속상해했던 기억이 나요. 큰 병을 선고 받고 그 병으로 인한 슬픔에 잠기는 것보다 연주가 뜻대로 잘 안 되는데 그게 병 때문이지 자기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는 것... 그녀의 인생 후반기 이야기도 슬펐지만, 제게는 그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사람 인생에 대해서 함부로 연민을 표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요..

    덕분에 엘가의 첼로 협주곡과 함께 일요일밤을 보내게 되네요.^^
  • 2011/03/07 21:03 #

    저 이해해요!
    실은 비슷한 경험이 있거든요.

    뒤 프레의 천분의 일의 재능에 다발성경화증의 십분의 일밖에 심각하지 않은 병이었지만.
    하여간에, 진단을 받고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어요.
    아아, 내 잘못이 아니었어.

    그녀가 일찍 죽은 것도 어찌 보면 구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천재로 사는 방법밖에 모르잖아요.
    너무 일찍 최고가 된 그녀가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란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병을 대충 극복하고 연주회를 열었다 쳐요.
    자기가 듣기에는 영 미흡한데 관객들은 예의 바르게 박수를 친다면 ㅠ_ㅠ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 홍홍양 2011/03/07 22:50 #

    정말 현실은 가끔 현실성 없는 드라마 같은 것 같기도 한가 봅니다.
    제가 속상해 했던 것도, 제 경험으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는데요. 프님도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뒤 프레가 말년에 멍하니 자기 연주곡을 듣고 있을 때가 많았다는데요.

    글 제목이 새삼 다시 보이네요.
  • 2011/03/08 20:54 #

    아아 멍하니 자기 연주를 듣고 있었다니 ㅠ_ㅠ

    저는 최근까지 말하자면 온실 속 화초였어요.
    그래서 결벽증 환자였죠, 정신적으로요.
    나이만 먹었지 그에 걸맞는 경험은 절대 부족하니까요-_-;;;

    남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을 이제 와서 하나씩 배우는 중입니다.

    뒤 프레 또한 비슷했을 것 같아요.
    좌절이라든가 연민 등 지금껏 이해 못하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들어오는데
    과연 누가 견딜 수 있을까요.
  • SvaraDeva 2011/03/06 22:20 #

    병이라고 하는게 말이죠. 정말 주위의 어떤기대와 자기자신에게의 기대와 환경의 불일치와 스트레스가 겹쳐지면 생기는 것 같아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결국 병때문에 못하게 되었다고 결론을 쓸 수 있도록요. 조물주(?)가 만들어낸 인간의 인생이란 것은 어쩜 이리 오묘한지. 그저 바닥을 구르는 의미없어보이는 벌레들에게도 저런 미묘함들이 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잘구르는 재능이나 첼로의 재능이나 멀리서 보면 똑같은 것일텐데, 그깟 구르는 것의 능력이 없어졌다고 인생이 뒤틀려버리다니. 아니 뒤틀어버린것이겠죠. 함부로 한번밖에 없는 현세를 뒤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 2011/03/07 21:08 #

    요즘 눈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하시나봐요.
    그러고 보니 SvaraDeva님도 천재 소리 자주 듣던 분이시잖아요.

    병 핑계를 대며 스스로의 무능력을 정당화하는 건 저 또한 반대합니다.
    하지만 SvaraDeva님이라면 반대로, 자신을 너무 몰아치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물론 고난을 무슨 꽃다발처럼 내걸며 스스로를 학대하는 건 안되겠지요.
    말씀하셨다시피 한 번밖에 없는 삶이니까요.
  • SvaraDeva 2011/03/08 08:03 #

    아니 프님 이런 감동의 답글을...T_T
    애초에 본문에 너무 이입되어버려서, 되도않는 횡설수설을 덧글로 올려서 죄송스러워하고 있었는데...
    뭐라하는지도 모르는 잡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시고 이런 대답을 주시다뇨.
    프님 팬이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ㅋㅋㅋ
  • 2011/03/08 20:56 #

    앗 저야말로 쓰고나서 괴로워하고 있었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한 마디 한 것 같아서요.
    저를 대표하는-_- 단점이거든요.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요놈의 조동아리가;;;
  • 당고 2011/03/07 02:39 #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흔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지금 인터넷이 잘 안 돼서 프 님이 링크해 주신 음악을 못 듣는 것이 저의 천추의 한......ㅠ
  • 2011/03/07 21:10 #

    삶은 드라마잖아요, 진짜로.
    실제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대로 아침 드라마로 만들면 사람들이 욕합니다.
    현실성 없다고 ㅋㅋㅋㅋㅋㅋ

    저 다큐멘터리가 한 시간짜리인데 사흘 전만 해도 통째로 올라와 있었거든요.
    근데 그 사이 막혔어요.
    제가 이 포스팅 쓰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_-;;;;

    조각조각으로는 어영부영 올라와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일단은 맛보기로 앞부분만 감상하셔요.
  • turtle 2011/03/07 14:01 #

    진짜 사연을 누가 알겠냐만 드러난 것만 보면 바렌보임이 정말 나쁜 **처럼 보이긴 해요. 실제 실력보다 살짝 저평가 받는 느낌이 드는 이유도 어쩌면 저 염문 때문에 찍힌 게 있어서 아닌가 싶습니다.

    주빈 메타는 얼마 전에 이스라엘 필하모닉이랑 같이 이 동네에 왔었지요. 음, 근데 왠지 싫어요. 그 조합은 왠지 싫단 말이지요. -_-
  • 2011/03/07 21:18 #

    그죠.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궁지에 몰린 반려의 손을 잡아주는 대신 놓아버리고 자기 살 길만 찾아간 거니까요.

    그 조합이 어째서 싫은지 대충 느낌이 옵니다.
    메타는 어째서 저 무리와 그렇게 친한지 모르겠어요.
    혼자만 나이 많은 데다가 유대인도 아닌데 말이죠;;;
  • SvaraDeva 2011/03/08 08:14 #

    글고보니 프로기프로그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네요. 깔맞춤의 바람직하지 않은 예라니... 좋아 보이는데 ^^;;
    발볼 별로 어마어마하지 않으신데요?
  • 2011/03/08 20:57 #

    설마 제가 어마어마한 발볼 사진을 그냥 올렸겠습니까.
    수십 장 중 엄선한 사진입니다요 ㅋㅋㅋ

    근데 '프로기프로그프로필'이라니 ㅍ이 너무 많아요;;;
    세 개도 아니고 네 개라니, 소리내어 읽으면 절대 안되겠어요.
  • brolly 2011/03/11 11:41 #

    하나하나 이름만으로도 깜짝깜짝 놀랄만한 대단한 거성들이 저렇게 서로 인생의 굴곡이 얽히고 설켜 있는 줄은 정말이지 미처 상상조차 못한 일이네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어요 이런 면 저런 면 모든 면에서..

    제목이 참 슬프네요..

  • 2011/03/12 11:04 #

    삶은 계속된다는 걸 깨닫는 것이야말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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